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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아이는 불안하다: 떠나기 전
웅진서가 | 15.05.27 | 조회수 5,099
“우리 꼭 가야 해요?”
아빠의 연구 년과 국외 장기 연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미국에 꼭 가야 하는지 여러 번 물었다. 특히 작은아이가 그랬다. 작은아이는 몇 번이고 되묻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똑같은 설명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아빠처럼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라고 기회를 줘. 그래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거야. 보통 이럴 때는 가족이 함께 가서 지내고 온단다.”
“한국에 그냥 있으면 안 되나요? 아빠 혼자 가면 안 돼요?”
“그동안 엄마랑 아빠가 바빠서 너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는데, 미국에 가면 지금보다 훨씬 여유가 많아지거든. 엄마 아빠랑 놀 시간도 많아지고, 좋지 않아?”
“잘 모르겠어요. 친구들과 헤어지기가 싫어요. 그리고 시간이 많아지면 아빠한테 더 많이 혼나는 것 아니에요?”
대략 이런 대화가 반복되었다. 큰아이와는 공중보건의 기간에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아서 아빠와의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 편이었다. 작은아이와는 그렇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나를 매우 어려워했다. 미국에서 작은아이와 친해지는 데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12년 6월 출국 2개월 전, 본격적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부모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생활필수품과 옷처럼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사용할 물건은 여행 가방에 넣고, 몇 개월 후에 받아도 되는 책이나 겨울 옷 등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을 먼저 분류했다.
작은아이는 어려서부터 ‘양양이’ 인형을 아꼈다. 밤에 잘 때 꼭 안고 자는 인형이다. 90년대 중반부터 아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형으로 큰아이를 거쳐 작은아이의 소유가 되었다. 본래 흰색이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나며 하도 손때가 타서 색이 누리끼리하게 변했다. 천도 헤져 터진 부위를 여러 차례 꿰맨 너덜너덜한 인형이다. 부모는 이것까지 미국에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 우체국 상자에는 넣지 못하게 하니 아이 나름대로는 그럼 직접 가져가면 되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문제는 8월 출국 때 가져갈 여행 가방을 쌀 무렵에 터졌다.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여행 가방 중 하나에 인형을 넣어 놓았다. 이때는 한국에 남길 것과 가방에 넣을 것을 구분하던 시기였다. 가방에는 미국에 도착해 바로 사용할 물품을 넣고 있었다. 초기 정착 때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것을 챙겨 가려니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여행 가방 한 개당 23kg의 무게 제한이 있기에 몇 번이고 체중계에 올려 무게를 재며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기를 반복했다. 부피 때문에 공간만 많이 차지하는 인형은 당연히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동시에 말했다.
“우인아, 양양이는 한국에 남겨 놓고 가자.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가지고 놀면 되잖아.”
아이는 갑자기 울음보를 터뜨렸다. 정말 꺼이꺼이 통곡을 했다. 부모는 처음에는 단호했다.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인형을 넣느라고 중요한 생활필수품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을 더 잘 아는 엄마가 강하게 아이를 설득했다.
“미국에 가서 더 좋은 인형을 사 줄게. 느낌이 포근하고 예쁜 인형이 많을 거야.”
“가져갈 수는 없어요? 꼭 가져가고 싶어요. 양양이가 없으면 안 돼요.”

신경전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아이는 낮에 울고 밤에도 양양이를 안고 울면서 잤다. 나는 영화 〈캐스트어웨이〉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애칭을 붙이고 애지중지하다가 그것을 잃어버리고는 통곡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아하, 작은아이에게 양양이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전이 대상이었구나. 아이에게는 인형을 가지고 가는 것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도 더 중요하겠구나.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결국 몇 가지 물건을 포기하고 인형을 가방에 넣었다.

부모와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한 아이들은 쉽게 불안해하지 않는다. 부모와 떨어져서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형성된 안전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나를 항상 보살피고 지켜보는 주 애착 대상(주로 엄마)의 심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한데, 곰 인형이나 담요 같은 물건이 안전 기지의 역할을 대신한다. 만화 <스누피>에서 담요를 항상 안고 다니는 라이너스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정신의학자인 도널드 위니코트는 이러한 물건을 ‘전이 대상’이라고 명명했다. 어른이든 아이든 고립감과 불안감을 느끼면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전이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작은아이가 이 인형을 얼마나 아꼈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좋아하는 다른 인형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낯선 세상에 대한 예기 불안이 아이로 하여금 양양이라는 전이 대상에 매달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작은아이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양양이를 안고 잔다. 태평양을 건너갔다가 온, 우리 집 장난감 중에서 출세한 축에 속하는 소위 외국물을 먹은 인형인 셈이다. 지금도 아이의 침대 한쪽에 놓인 인형을 보면 그때의 아이 모습이 떠오른다. 고마운 인형이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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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웅진서가
내용 “우리 꼭 가야 해요?”
아빠의 연구 년과 국외 장기 연수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미국에 꼭 가야 하는지 여러 번 물었다. 특히 작은아이가 그랬다. 작은아이는 몇 번이고 되묻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똑같은 설명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아빠처럼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오라고 기회를 줘. 그래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거야. 보통 이럴 때는 가족이 함께 가서 지내고 온단다.”
“한국에 그냥 있으면 안 되나요? 아빠 혼자 가면 안 돼요?”
“그동안 엄마랑 아빠가 바빠서 너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는데, 미국에 가면 지금보다 훨씬 여유가 많아지거든. 엄마 아빠랑 놀 시간도 많아지고, 좋지 않아?”
“잘 모르겠어요. 친구들과 헤어지기가 싫어요. 그리고 시간이 많아지면 아빠한테 더 많이 혼나는 것 아니에요?”
대략 이런 대화가 반복되었다. 큰아이와는 공중보건의 기간에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아서 아빠와의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 편이었다. 작은아이와는 그렇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나를 매우 어려워했다. 미국에서 작은아이와 친해지는 데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12년 6월 출국 2개월 전, 본격적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부모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생활필수품과 옷처럼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사용할 물건은 여행 가방에 넣고, 몇 개월 후에 받아도 되는 책이나 겨울 옷 등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을 먼저 분류했다.
작은아이는 어려서부터 ‘양양이’ 인형을 아꼈다. 밤에 잘 때 꼭 안고 자는 인형이다. 90년대 중반부터 아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형으로 큰아이를 거쳐 작은아이의 소유가 되었다. 본래 흰색이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나며 하도 손때가 타서 색이 누리끼리하게 변했다. 천도 헤져 터진 부위를 여러 차례 꿰맨 너덜너덜한 인형이다. 부모는 이것까지 미국에 가져갈 생각이 없었다. 우체국 상자에는 넣지 못하게 하니 아이 나름대로는 그럼 직접 가져가면 되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문제는 8월 출국 때 가져갈 여행 가방을 쌀 무렵에 터졌다.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여행 가방 중 하나에 인형을 넣어 놓았다. 이때는 한국에 남길 것과 가방에 넣을 것을 구분하던 시기였다. 가방에는 미국에 도착해 바로 사용할 물품을 넣고 있었다. 초기 정착 때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것을 챙겨 가려니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여행 가방 한 개당 23kg의 무게 제한이 있기에 몇 번이고 체중계에 올려 무게를 재며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기를 반복했다. 부피 때문에 공간만 많이 차지하는 인형은 당연히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동시에 말했다.
“우인아, 양양이는 한국에 남겨 놓고 가자.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가지고 놀면 되잖아.”
아이는 갑자기 울음보를 터뜨렸다. 정말 꺼이꺼이 통곡을 했다. 부모는 처음에는 단호했다.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인형을 넣느라고 중요한 생활필수품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을 더 잘 아는 엄마가 강하게 아이를 설득했다.
“미국에 가서 더 좋은 인형을 사 줄게. 느낌이 포근하고 예쁜 인형이 많을 거야.”
“가져갈 수는 없어요? 꼭 가져가고 싶어요. 양양이가 없으면 안 돼요.”

신경전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아이는 낮에 울고 밤에도 양양이를 안고 울면서 잤다. 나는 영화 〈캐스트어웨이〉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애칭을 붙이고 애지중지하다가 그것을 잃어버리고는 통곡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아하, 작은아이에게 양양이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전이 대상이었구나. 아이에게는 인형을 가지고 가는 것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도 더 중요하겠구나.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결국 몇 가지 물건을 포기하고 인형을 가방에 넣었다.

부모와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한 아이들은 쉽게 불안해하지 않는다. 부모와 떨어져서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형성된 안전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나를 항상 보살피고 지켜보는 주 애착 대상(주로 엄마)의 심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한데, 곰 인형이나 담요 같은 물건이 안전 기지의 역할을 대신한다. 만화 <스누피>에서 담요를 항상 안고 다니는 라이너스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정신의학자인 도널드 위니코트는 이러한 물건을 ‘전이 대상’이라고 명명했다. 어른이든 아이든 고립감과 불안감을 느끼면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전이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작은아이가 이 인형을 얼마나 아꼈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좋아하는 다른 인형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낯선 세상에 대한 예기 불안이 아이로 하여금 양양이라는 전이 대상에 매달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작은아이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양양이를 안고 잔다. 태평양을 건너갔다가 온, 우리 집 장난감 중에서 출세한 축에 속하는 소위 외국물을 먹은 인형인 셈이다. 지금도 아이의 침대 한쪽에 놓인 인형을 보면 그때의 아이 모습이 떠오른다. 고마운 인형이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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