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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학교생활: 안전교육
웅진서가 | 15.06.02 | 조회수 2,568
2014년 4월 미국에서 아이들 봄방학 중에 세월호 사건을 접했다. CNN 채널에서 24시간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사고 소식에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했다. 선실에서 나오지 말고 대기하라는 말을 학생들 대부분이 따랐다는 것이 특히 안타까웠다. 언론으로 접한 부모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겠다는 것이다. “어른들 말을 믿지 말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되면 네 판단에 따라 행동해.”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어른들을 믿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이 맞는 걸까? 생각할수록 더욱 서글퍼졌다. 재빠르고 순간 판단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희생되는, 개인의 능력과 순발력에 의해 생사가 좌우되는 현실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인지 ……. 지금까지 그래왔듯 탁상공론 수준으로 대책을 마련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고 언젠가 똑같은 참극이 다시 일어날 것만 같은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고쳐야 할까?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미국 학교의 안전 교육과 재난 대비 훈련을 관심 있게 보았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작은아이에게도 자세히 물어보았다.
“매달 한 번은 모의훈련을 해요. 허리케인, 테러, 화재, 지진 …… 여러 가지 상황을 한 번에 한 가지씩 돌아가면서 훈련해요. 허리케인 대비 훈련 때는 지하층으로 대피하고, 화재 훈련 때는 건물 밖으로 전부 나가요. 총기 사건이 나고서는 그것도 대비 훈련이 생겼어요. 경보가 울리면 선생님은 문을 잠그고 학생들은 책상 아래나 교실 벽처럼 교실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전부 숨어요.”
훈련은 작은아이의 표현처럼 아주 구체적이었다. 몇 가지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먼저 훈련마다 고유의 명칭과 신호가 있다는 점이다. 총기 대비 훈련은 ‘코드 레드’였다. 훈련을 통해 아이들은 경보만 들어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고 그에 맞는 행동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파블로프 개의 조건 반사처럼 특정한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훈련 내용이 실제 상황을 재현하는 수준으로 매우 자세했다. 테러범을 가장한 교직원이 교실마다 다니면서 문이나 창문을 열어 보고 창문 너머로 사람이 보이는지 둘러보는 등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훈련했다. 마지막으로 훈련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태도가 진지했다.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일이기에 교사와 학생 할 것 없이 기민하게 훈련에 임했다.
내가 무엇보다도 주목했던 것은 큰아이가 받는 훈련이 작은아이가 받는 훈련과 똑같다는 점이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받는 훈련이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매년 동일한 훈련을 반복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훈련의 핵심이었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논의한 우리 사회의 직업 윤리, 사회 약자에 대한 보호, 안전 불감증에 대해 내 의견을 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내 아이들이 다른 나라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재난 대비 훈련을 우리나라에서도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제공해서 몸에 배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계속 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하게 반복해서 훈련을 받으면 체화가 되고, 이렇게 몸으로 습득한 것들은 위기 상황에서 훈련받은 대로 발휘된다. 이렇듯 습관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절차 기억은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 장기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미국의 교육 현장은 반복 훈련과 기억의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재난 대비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훈련에 적용해서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반복시키는 것이리라.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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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웅진서가
내용 2014년 4월 미국에서 아이들 봄방학 중에 세월호 사건을 접했다. CNN 채널에서 24시간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사고 소식에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했다. 선실에서 나오지 말고 대기하라는 말을 학생들 대부분이 따랐다는 것이 특히 안타까웠다. 언론으로 접한 부모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겠다는 것이다. “어른들 말을 믿지 말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되면 네 판단에 따라 행동해.”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어른들을 믿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이 맞는 걸까? 생각할수록 더욱 서글퍼졌다. 재빠르고 순간 판단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희생되는, 개인의 능력과 순발력에 의해 생사가 좌우되는 현실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인지 ……. 지금까지 그래왔듯 탁상공론 수준으로 대책을 마련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고 언젠가 똑같은 참극이 다시 일어날 것만 같은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고쳐야 할까? 누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미국 학교의 안전 교육과 재난 대비 훈련을 관심 있게 보았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작은아이에게도 자세히 물어보았다.
“매달 한 번은 모의훈련을 해요. 허리케인, 테러, 화재, 지진 …… 여러 가지 상황을 한 번에 한 가지씩 돌아가면서 훈련해요. 허리케인 대비 훈련 때는 지하층으로 대피하고, 화재 훈련 때는 건물 밖으로 전부 나가요. 총기 사건이 나고서는 그것도 대비 훈련이 생겼어요. 경보가 울리면 선생님은 문을 잠그고 학생들은 책상 아래나 교실 벽처럼 교실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전부 숨어요.”
훈련은 작은아이의 표현처럼 아주 구체적이었다. 몇 가지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먼저 훈련마다 고유의 명칭과 신호가 있다는 점이다. 총기 대비 훈련은 ‘코드 레드’였다. 훈련을 통해 아이들은 경보만 들어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고 그에 맞는 행동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파블로프 개의 조건 반사처럼 특정한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훈련 내용이 실제 상황을 재현하는 수준으로 매우 자세했다. 테러범을 가장한 교직원이 교실마다 다니면서 문이나 창문을 열어 보고 창문 너머로 사람이 보이는지 둘러보는 등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훈련했다. 마지막으로 훈련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태도가 진지했다.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일이기에 교사와 학생 할 것 없이 기민하게 훈련에 임했다.
내가 무엇보다도 주목했던 것은 큰아이가 받는 훈련이 작은아이가 받는 훈련과 똑같다는 점이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받는 훈련이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매년 동일한 훈련을 반복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훈련의 핵심이었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논의한 우리 사회의 직업 윤리, 사회 약자에 대한 보호, 안전 불감증에 대해 내 의견을 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내 아이들이 다른 나라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재난 대비 훈련을 우리나라에서도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제공해서 몸에 배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계속 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철저하게 반복해서 훈련을 받으면 체화가 되고, 이렇게 몸으로 습득한 것들은 위기 상황에서 훈련받은 대로 발휘된다. 이렇듯 습관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절차 기억은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 장기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미국의 교육 현장은 반복 훈련과 기억의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재난 대비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훈련에 적용해서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반복시키는 것이리라.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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