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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listening
웅진서가 | 15.06.04 | 조회수 3,974
언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순서로 발달한다. 말이 늦는 아이들이 소아정신과에 자주 오는데 말을 잘 알아듣고 심부름도 하는 등 부모의 언어적 지시를 잘 따르는 것이 확인되면 언젠가는 말이 트일 것이라고 부모를 안심시킨다. 이렇듯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부터가 언어적 의사소통의 시작이다.
“미국에 가면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돼. 안내 방송부터 제대로 알아들어야 하니 촉각이 곤두서지. 열심히 귀를 기울여서 들어도 알아들을까 말까인데 계속 신경을 쓰고 있으니 금세 피곤해져.”
의과대학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여행으로 잠시 가는 것이면 스트레스는 금방 끝난다. 그렇지만 거주를 목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갈 때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한다.
피츠버그에는 초기 정착을 전문으로 도와주는 한국 사람이 없었다. 물론 먼저 정착한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은행과 관공서를 방문해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은 모두 직접 해야만 했다. 자동차 구입과 자동차 보험 계약같이 한국에서도 자주 해 보지 않은 일은 더욱 스트레스를 주었다. 부부는 한 몸이라지만 미국에서만큼 우리가 일심동체였던 적은 없었다. 둘이 합심해서 4개의 눈, 4개의 귀, 2개의 입을 모두 동원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리고 둘이 같이 있어야 상황을 판단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었다. 멀티태스킹은 어려웠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둘 중 한 명이 말하기 임무를 맡으면 다른 한 명은 듣기 임무를 맡아야 했다. 말하는 사람은 말하는 것에만 집중해야지 어줍지 않게 듣는 것까지 하려고 하면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이 엉켜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엇인가 체계가 잘 갖추어진 것 같지만 실제 의사소통에 들어가면 준비한 것이 별 소용이 없었다. 말 그대로 온몸을 사용해 처절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평소 매우 독립적이어서 한국에서는 혼자 살아가라고 해도 남편 없이 두 아이들을 꿋꿋하게 키우고도 남을 아내는, 낯선 나라에 오자 모든 것을 내게 의존했다. 나는 어릴 적 잠깐이라도 외국에 산 경험이 있었던 반면, 아내는 한국에서만 자랐고 어학연수도 간 적이 없었다. 피츠버그에 도착한 다음 날 아파트에 이사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아내의 부탁이 시작되었다. “여보, 수돗물 압력이 약해요.” “창문은 어떻게 열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안 열리네.” “주방 개수대에 물이 안 내려가요.” 귀결점은 미안하게도 항상 같았다. “관리실에 연락해요.” 사회 보장 사무소, 운전면허 시험장 등 미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하고, 학교와 병원 관련 행정 처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의사소통마저 내게 맡기니 과부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생활 15년 중에서 그때만큼 내가 가장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던 적도 없었다.
관리실은 걸어서 5분 거리도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있을 때마다 행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를 해야만 했다. 연수 초반에는 이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미국에서 오래 산 동생이 전화로 15분 이상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영어가 많이 숙달된 것이라고 말해 준 바 있다. 전화로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 의사소통은 단절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전화로 대화를 일정 시간 이상 지속할 수 있다면 언어적인 의사소통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뜻이다. 아내는 미국에 오기 전 몇 개월 동안 전화 영어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일상 회화 중심으로 의사소통을 한 것이 문제였다. 정작 전화로 여러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에 와서야 깨달았다. “한국으로 시집 온 동남아시아 신부들의 답답함을 이해하겠어.” 처음 몇 개월은 종종 이렇게 푸념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아내가 아니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내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원체 호기심이 많고 매사에 두려움이 없는 성격도 한 몫 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연수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나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들의 연락을 가끔 받았다. “아이들은 영어 알아듣는 데 문제 없어?” “온 지 3개월 정도 되었는데 아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이렇게 부모들은 아이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한다. 아이가 처음에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초조해하거나 조바심을 내지는 말자. 학교를 제대로 다닌다면 1년 후에는 일상적인 대화까지 문제없이 알아듣는다. 처음에는 못 알아듣는 것 같고 그래서 입까지 다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듣기 능력은 계속 발전한다.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울 때처럼 말이다. 어른도 영어가 느는데 아이는 반드시 는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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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웅진서가
내용 언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순서로 발달한다. 말이 늦는 아이들이 소아정신과에 자주 오는데 말을 잘 알아듣고 심부름도 하는 등 부모의 언어적 지시를 잘 따르는 것이 확인되면 언젠가는 말이 트일 것이라고 부모를 안심시킨다. 이렇듯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부터가 언어적 의사소통의 시작이다.
“미국에 가면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돼. 안내 방송부터 제대로 알아들어야 하니 촉각이 곤두서지. 열심히 귀를 기울여서 들어도 알아들을까 말까인데 계속 신경을 쓰고 있으니 금세 피곤해져.”
의과대학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여행으로 잠시 가는 것이면 스트레스는 금방 끝난다. 그렇지만 거주를 목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갈 때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한다.
피츠버그에는 초기 정착을 전문으로 도와주는 한국 사람이 없었다. 물론 먼저 정착한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은행과 관공서를 방문해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은 모두 직접 해야만 했다. 자동차 구입과 자동차 보험 계약같이 한국에서도 자주 해 보지 않은 일은 더욱 스트레스를 주었다. 부부는 한 몸이라지만 미국에서만큼 우리가 일심동체였던 적은 없었다. 둘이 합심해서 4개의 눈, 4개의 귀, 2개의 입을 모두 동원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리고 둘이 같이 있어야 상황을 판단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었다. 멀티태스킹은 어려웠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둘 중 한 명이 말하기 임무를 맡으면 다른 한 명은 듣기 임무를 맡아야 했다. 말하는 사람은 말하는 것에만 집중해야지 어줍지 않게 듣는 것까지 하려고 하면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이 엉켜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엇인가 체계가 잘 갖추어진 것 같지만 실제 의사소통에 들어가면 준비한 것이 별 소용이 없었다. 말 그대로 온몸을 사용해 처절하게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평소 매우 독립적이어서 한국에서는 혼자 살아가라고 해도 남편 없이 두 아이들을 꿋꿋하게 키우고도 남을 아내는, 낯선 나라에 오자 모든 것을 내게 의존했다. 나는 어릴 적 잠깐이라도 외국에 산 경험이 있었던 반면, 아내는 한국에서만 자랐고 어학연수도 간 적이 없었다. 피츠버그에 도착한 다음 날 아파트에 이사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아내의 부탁이 시작되었다. “여보, 수돗물 압력이 약해요.” “창문은 어떻게 열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안 열리네.” “주방 개수대에 물이 안 내려가요.” 귀결점은 미안하게도 항상 같았다. “관리실에 연락해요.” 사회 보장 사무소, 운전면허 시험장 등 미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하고, 학교와 병원 관련 행정 처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의사소통마저 내게 맡기니 과부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생활 15년 중에서 그때만큼 내가 가장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던 적도 없었다.
관리실은 걸어서 5분 거리도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있을 때마다 행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를 해야만 했다. 연수 초반에는 이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미국에서 오래 산 동생이 전화로 15분 이상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영어가 많이 숙달된 것이라고 말해 준 바 있다. 전화로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 의사소통은 단절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전화로 대화를 일정 시간 이상 지속할 수 있다면 언어적인 의사소통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뜻이다. 아내는 미국에 오기 전 몇 개월 동안 전화 영어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일상 회화 중심으로 의사소통을 한 것이 문제였다. 정작 전화로 여러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에 와서야 깨달았다. “한국으로 시집 온 동남아시아 신부들의 답답함을 이해하겠어.” 처음 몇 개월은 종종 이렇게 푸념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아내가 아니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내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원체 호기심이 많고 매사에 두려움이 없는 성격도 한 몫 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연수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나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들의 연락을 가끔 받았다. “아이들은 영어 알아듣는 데 문제 없어?” “온 지 3개월 정도 되었는데 아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이렇게 부모들은 아이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한다. 아이가 처음에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초조해하거나 조바심을 내지는 말자. 학교를 제대로 다닌다면 1년 후에는 일상적인 대화까지 문제없이 알아듣는다. 처음에는 못 알아듣는 것 같고 그래서 입까지 다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듣기 능력은 계속 발전한다.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울 때처럼 말이다. 어른도 영어가 느는데 아이는 반드시 는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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