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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적응: 경계심
웅진서가 | 15.06.05 | 조회수 2,574
다른 나라의 사회와 문화에 녹아들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귀고 신뢰 있는 관계를 쌓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고 연구 결과들을 일반화시키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아동청소년이 외국의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데 최소한 1년 이상의 기간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초기 적응에서 사용하는 심리 기제는 대개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경계’, ‘고립·소외’와 같은 방어 기제다. 어쩌면 이와 같은 심리 기제를 동원하기 때문에 심리 적응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아동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어른도 똑같다.

큰아이는 “처음에는 스스로 장벽을 세웠어요.”라고 한참 후에 내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먼저 관찰부터 했어요.”라고 회고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새로운 환경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부터 관찰하고 모방과 학습을 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터득한 것들을 연습해 보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이며 다른 사회의 말과 행동이 체화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렇게 ‘경계 - 소외 - 관찰 - 학습 - 연습’의 과정을 반복하며 아이는 낯선 환경에 한 걸음 한 걸음 적응해 나갔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연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하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였다. 내가 외향적이고 활발한 사람이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른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시간표를 쫓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마음이 항상 불편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자리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어려서 외국에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그렇게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성격 탓으로 돌렸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니 적응하는 데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심리 적응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돌아보면 연수 첫 해에 연구실을 같이 사용한 동료들과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것 같다. 가끔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 필요한 것을 물어보는, 어떻게 보면 사무적인 관계였다. 이와 다르게 둘째 해에 연구실에 새로 들어온 동료들과는 재미있게 잘 지냈다. 가끔 식사도 같이 하고, 술도 마시러 가고,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서로의 개인사를 털어놓고 이야기하면서 친한 친구가 되었다. 2년 연수 생활 중 마지막 6개월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웠다. 지금 회고하면 나 역시 ‘경계 - 소외 - 관찰 - 학습 - 연습’의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어려서 외국에 살았기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어른으로서 외국에서 생활하며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학술적인 것을 비롯한 전문적인 의사소통 또한 내게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나도 먼저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를 주고받는지 관찰했고 따라서 해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이메일을 이용한 의사소통에서도 사람들이 어떤 문구를 많이 사용하는지, 서로 어떻게 묻고 답하는지 등을 관찰하고 연습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아서 의사소통이 직설적인 때도 있고 우회적인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대부분 짧고 직설적인 의사소통에 적응하지 못해 처음에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의사소통이 우회적인 경우에는 그 숨은 뜻을 파악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사회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해석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대표적으로 의사소통의 예를 들었지만, 다른 모든 것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적응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 부모는 공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적응도 항상 물어보고 도와주어야 한다. 최소한 1년 이상은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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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웅진서가
내용 다른 나라의 사회와 문화에 녹아들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귀고 신뢰 있는 관계를 쌓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고 연구 결과들을 일반화시키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아동청소년이 외국의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데 최소한 1년 이상의 기간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초기 적응에서 사용하는 심리 기제는 대개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경계’, ‘고립·소외’와 같은 방어 기제다. 어쩌면 이와 같은 심리 기제를 동원하기 때문에 심리 적응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아동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어른도 똑같다.

큰아이는 “처음에는 스스로 장벽을 세웠어요.”라고 한참 후에 내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먼저 관찰부터 했어요.”라고 회고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새로운 환경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부터 관찰하고 모방과 학습을 한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터득한 것들을 연습해 보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이며 다른 사회의 말과 행동이 체화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렇게 ‘경계 - 소외 - 관찰 - 학습 - 연습’의 과정을 반복하며 아이는 낯선 환경에 한 걸음 한 걸음 적응해 나갔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연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하는 것부터가 스트레스였다. 내가 외향적이고 활발한 사람이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른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시간표를 쫓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모르게 마음이 항상 불편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자리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어려서 외국에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그렇게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성격 탓으로 돌렸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니 적응하는 데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심리 적응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돌아보면 연수 첫 해에 연구실을 같이 사용한 동료들과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것 같다. 가끔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 필요한 것을 물어보는, 어떻게 보면 사무적인 관계였다. 이와 다르게 둘째 해에 연구실에 새로 들어온 동료들과는 재미있게 잘 지냈다. 가끔 식사도 같이 하고, 술도 마시러 가고,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서로의 개인사를 털어놓고 이야기하면서 친한 친구가 되었다. 2년 연수 생활 중 마지막 6개월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웠다. 지금 회고하면 나 역시 ‘경계 - 소외 - 관찰 - 학습 - 연습’의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어려서 외국에 살았기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어른으로서 외국에서 생활하며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학술적인 것을 비롯한 전문적인 의사소통 또한 내게는 새로운 영역이었다. 나도 먼저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를 주고받는지 관찰했고 따라서 해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이메일을 이용한 의사소통에서도 사람들이 어떤 문구를 많이 사용하는지, 서로 어떻게 묻고 답하는지 등을 관찰하고 연습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아서 의사소통이 직설적인 때도 있고 우회적인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대부분 짧고 직설적인 의사소통에 적응하지 못해 처음에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의사소통이 우회적인 경우에는 그 숨은 뜻을 파악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사회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해석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대표적으로 의사소통의 예를 들었지만, 다른 모든 것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적응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 부모는 공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적응도 항상 물어보고 도와주어야 한다. 최소한 1년 이상은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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