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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적응: 자신감 하락
웅진서가 | 15.06.08 | 조회수 3,984
이제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된 큰아이를 데리고 미국 연수를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대부분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우려하는 말을 했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모르겠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때 가는 아이들은 많이 힘들어하더라구요.”
“미국에 가서 적응한다손 치더라도 나중에 돌아와서는 더 어려울걸요. 적응 못해서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도 많아요”
“엄마와 아이는 서울에 있는 게 어떻겠어요?”
여러 조언을 들었지만 나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한다.’가 내 철칙이었기 때문에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는 것은 애초에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소아정신과 의사로 여러 가족을 만나면서 가족이 함께 있지 못할 때 불행해지는 것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주위에서 조언해 주는 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었다. 내 스스로가 낯선 세상에 던져진 아이로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만 5세가 되기 직전 부모님을 따라 태국에 가서 살았던 적이 있다. 지금 세대라면 영어 유치원을 다니면서 영어에 사전 노출되었을 수 있었겠지만 1970년대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지금도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태국의 유치원에 간 첫날이었을 것이다. 운동장에서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뛰어놀던 아이들을 나 혼자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던 기억이다. 기억과 관련한 정서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말 그대로 공황 상태였을 것이다.
30여 년 전 일이어서 이제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영어를 갓 배우기 시작해 말도 잘하지 못하던 내가 그래도 학교에서 주눅이 들지 않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수학 때문이었다. 수학을 잘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 나간 것이 자신감을 형성하는 데 주효했다. 수학은 수준별로 진도를 나갔는데, 선생님이 내 주는 과제를 수업 시간에 풀어서 제출하면 다음 단계 과제를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한번은 새로운 과제에 따라 나 홀로 학교 운동장에 나와서 운동장의 길이와 면적을 측정하고 계산했던 기억도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그날 나는 새까맣게 탔다. 1978년 정도였으니 만 6세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약간은 흥분되어서 으쓱한 기분으로 운동장을 걸어 다니던 그때의 나를 가끔 떠올릴 때가 있다. 그 어린 나이에 자신감이라는 말은 분명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이 정도에 나에 대한 자신감을 처음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자신감을 처음 가졌던 게 언제니?” 아이는 조금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발레를 잘했을 때였어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고 뿌듯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는 느낌이었어요.” 언제였는지 기억이 난다. 큰아이가 만 4세 정도였는데, 발레 학원에는 내가 많이 데리고 다녔다. 첫 공연 때는 아내는 가지 못하고 나만 갈 수 있었다. 큰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데리러 갔을 때 아이가 한 말이 기억난다. “하나를 잊어버렸어요.” 연습했던 것 중에서 동작 하나를 잊어버리고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린 녀석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내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리는 눈치였다. “뭘 잊어버려서 못했는지 아빠는 몰랐는데? 잘했어, 아주 잘했어.” 내 말을 듣고 나자 아이는 기뻐하고 안심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겠지만 내가 만일 그때 “어쩌다가 틀렸니? 왜 틀렸어?”라고 말했다면 아이의 반응은 달라졌을 것이다.

큰아이는 미국이라는 낯선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든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기존에 자신감을 얻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케스트라 첫 시간이 있었던 날 아이는 학교에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니까 아이들이 놀라더라구요. 선생님도 눈여겨보구요. 여기서 잘하는 것이 있으니 기분이 좋아요.” 그다음부터는 본인이 이야기한 그대로다. 돌아보면 아이에게는 그날이 미국 생활 적응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날의 경험 이후 아이는 하나둘씩 자신감을 찾아갔다.
부모는 아이에게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려면, 잘하는 것을 일깨우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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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웅진서가
내용 이제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된 큰아이를 데리고 미국 연수를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대부분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우려하는 말을 했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모르겠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때 가는 아이들은 많이 힘들어하더라구요.”
“미국에 가서 적응한다손 치더라도 나중에 돌아와서는 더 어려울걸요. 적응 못해서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도 많아요”
“엄마와 아이는 서울에 있는 게 어떻겠어요?”
여러 조언을 들었지만 나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한다.’가 내 철칙이었기 때문에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는 것은 애초에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소아정신과 의사로 여러 가족을 만나면서 가족이 함께 있지 못할 때 불행해지는 것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주위에서 조언해 주는 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었다. 내 스스로가 낯선 세상에 던져진 아이로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만 5세가 되기 직전 부모님을 따라 태국에 가서 살았던 적이 있다. 지금 세대라면 영어 유치원을 다니면서 영어에 사전 노출되었을 수 있었겠지만 1970년대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지금도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태국의 유치원에 간 첫날이었을 것이다. 운동장에서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뛰어놀던 아이들을 나 혼자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던 기억이다. 기억과 관련한 정서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말 그대로 공황 상태였을 것이다.
30여 년 전 일이어서 이제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영어를 갓 배우기 시작해 말도 잘하지 못하던 내가 그래도 학교에서 주눅이 들지 않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수학 때문이었다. 수학을 잘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 나간 것이 자신감을 형성하는 데 주효했다. 수학은 수준별로 진도를 나갔는데, 선생님이 내 주는 과제를 수업 시간에 풀어서 제출하면 다음 단계 과제를 받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한번은 새로운 과제에 따라 나 홀로 학교 운동장에 나와서 운동장의 길이와 면적을 측정하고 계산했던 기억도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그날 나는 새까맣게 탔다. 1978년 정도였으니 만 6세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약간은 흥분되어서 으쓱한 기분으로 운동장을 걸어 다니던 그때의 나를 가끔 떠올릴 때가 있다. 그 어린 나이에 자신감이라는 말은 분명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이 정도에 나에 대한 자신감을 처음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자신감을 처음 가졌던 게 언제니?” 아이는 조금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발레를 잘했을 때였어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고 뿌듯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는 느낌이었어요.” 언제였는지 기억이 난다. 큰아이가 만 4세 정도였는데, 발레 학원에는 내가 많이 데리고 다녔다. 첫 공연 때는 아내는 가지 못하고 나만 갈 수 있었다. 큰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데리러 갔을 때 아이가 한 말이 기억난다. “하나를 잊어버렸어요.” 연습했던 것 중에서 동작 하나를 잊어버리고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린 녀석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내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리는 눈치였다. “뭘 잊어버려서 못했는지 아빠는 몰랐는데? 잘했어, 아주 잘했어.” 내 말을 듣고 나자 아이는 기뻐하고 안심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겠지만 내가 만일 그때 “어쩌다가 틀렸니? 왜 틀렸어?”라고 말했다면 아이의 반응은 달라졌을 것이다.

큰아이는 미국이라는 낯선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든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기존에 자신감을 얻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케스트라 첫 시간이 있었던 날 아이는 학교에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니까 아이들이 놀라더라구요. 선생님도 눈여겨보구요. 여기서 잘하는 것이 있으니 기분이 좋아요.” 그다음부터는 본인이 이야기한 그대로다. 돌아보면 아이에게는 그날이 미국 생활 적응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날의 경험 이후 아이는 하나둘씩 자신감을 찾아갔다.
부모는 아이에게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려면, 잘하는 것을 일깨우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해외연수’는 책 《아이를 외국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면》(김재원, 김지인 지음/웅진서가)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연재합니다.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 아빠와 중2 딸이 2년 동안 미국에 살며, 하나하나 겪고 함께 쓴 아이 적응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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