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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 끌기 1
조벽교수 | 05.07.29 | 조회수 8,435
교수란 직업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강의를 할 때 수백개의 초롱 초롱한 눈동자가 온통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자기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 빠짐 없이 필기하는 "어여쁜" 학생들을 볼 때 느낄수 있는 그 황홀함! 강의는 확실히 중독성이 짙은 직업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상을 깨부수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입니다. 아예 엎어져 자거나 옆 사람하고 속닥속닥거리는 "못되먹은" 학생을 보는 순간 속이 확 뒤집어지지 않습니까?

교수가 강의를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였더라도 학생들이 강의 내용에 주의력을 모으지 않으면 헛된 일입니다. 강의 전날 밤새워 준비한 강의라면 더욱 더 열이 뻗치겠지요. 그래서 야단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야단쳐봤자 졸고 싶은 학생은 계속해서 졸게됩니다. 다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조는 기술을 터득할 것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졸 수 있는 경지까지 도통한 학생도 있습니다. 잡담하던 학생은 말소리 대신 쪽지를 돌리며 킥킥거릴 것입니다. 이럴 때 어이없어 하거나 실망하거나 더 크게 야단치지 마셔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학생들의 그러한 태도는 너무나 당연하며, 괜히 윽박지르다가는 역효과만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력에 대한 연구를 보면 "주의력은 보다 더 관심을 끄는 대상에게 저절로 가게된다."하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 있습니다. "옮겨다니는" 주위력은 생리적 행위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걷다가도 자동차가 빵빵하면 차 쪽으로 신경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수의 강의보다 옆 학생의 잡담이 더 흥미롭다면 주의력은 저절로 옆 학생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강의 시간에 잡담하는 학생들을 야단치기보다는 자신의 강의가 혹시 지루하지 않았나 (왜 학생들의 주의력을 얻지 못했을까)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교수가 반성해야 한다고 해서 주의산만한 학생들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학생들은 물론 배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배울 자세가 부족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특히 초중고 때 예습 복습을 집에서 미리 다 하고 학교에는 별로 새로운 것을 배운 적이 없던 학생들이지 않습니까. 입시에서 진을 뽑았고 공부라면 진저리를 치는 학생들 아닙니까. 이런 학생들은 야단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 주의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술을 터득하면 이런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공자님도 교육의 4대 조건의 하나로 "예방"을 꼽았습니다.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학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2. 수업 방법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3. 교수가 행동을 통하여 주의 집중을 유지한다.

다음 호에는 위의 방법에 필요한 기술을 차례로 설명하겠습니다.

<>

학생들의 주의력을 모으기 위해 학생들이 졸 때 야단친다거나 떠들 때 벌 준다거나 하는 "외부 강압적 통제" 방법은 구시대의 방법입니다. 지식을 독점한 교수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을 때에나 효과적이었을 것있니다. (한때 학생들이 자신의 지도 교수를 "아바이"라고 불렀습니다. 교수가 학생들의 앞날에 아버지 만큼 절대적인 행세를 하던 때의 유행어가 구시대의 학생-교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새시대에는 교수의 권위가 "모범성"에서 나옵니다.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교수는 새시대의 모범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권위를 내세우는 교수는 학생들에게 무섭다기보다는 그저 이상하거나 불쌍한 존재로 비쳐질 따름입니다. 권위 내세우기는 스스로 초라해지는 지름길인 것이지요.

ⓒ Peck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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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벽교수
내용 교수란 직업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강의를 할 때 수백개의 초롱 초롱한 눈동자가 온통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자기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 빠짐 없이 필기하는 "어여쁜" 학생들을 볼 때 느낄수 있는 그 황홀함! 강의는 확실히 중독성이 짙은 직업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상을 깨부수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입니다. 아예 엎어져 자거나 옆 사람하고 속닥속닥거리는 "못되먹은" 학생을 보는 순간 속이 확 뒤집어지지 않습니까?

교수가 강의를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였더라도 학생들이 강의 내용에 주의력을 모으지 않으면 헛된 일입니다. 강의 전날 밤새워 준비한 강의라면 더욱 더 열이 뻗치겠지요. 그래서 야단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야단쳐봤자 졸고 싶은 학생은 계속해서 졸게됩니다. 다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조는 기술을 터득할 것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졸 수 있는 경지까지 도통한 학생도 있습니다. 잡담하던 학생은 말소리 대신 쪽지를 돌리며 킥킥거릴 것입니다. 이럴 때 어이없어 하거나 실망하거나 더 크게 야단치지 마셔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학생들의 그러한 태도는 너무나 당연하며, 괜히 윽박지르다가는 역효과만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력에 대한 연구를 보면 "주의력은 보다 더 관심을 끄는 대상에게 저절로 가게된다."하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 있습니다. "옮겨다니는" 주위력은 생리적 행위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걷다가도 자동차가 빵빵하면 차 쪽으로 신경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수의 강의보다 옆 학생의 잡담이 더 흥미롭다면 주의력은 저절로 옆 학생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강의 시간에 잡담하는 학생들을 야단치기보다는 자신의 강의가 혹시 지루하지 않았나 (왜 학생들의 주의력을 얻지 못했을까)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교수가 반성해야 한다고 해서 주의산만한 학생들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학생들은 물론 배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배울 자세가 부족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특히 초중고 때 예습 복습을 집에서 미리 다 하고 학교에는 별로 새로운 것을 배운 적이 없던 학생들이지 않습니까. 입시에서 진을 뽑았고 공부라면 진저리를 치는 학생들 아닙니까. 이런 학생들은 야단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 주의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학생들이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술을 터득하면 이런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공자님도 교육의 4대 조건의 하나로 "예방"을 꼽았습니다.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학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2. 수업 방법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3. 교수가 행동을 통하여 주의 집중을 유지한다.

다음 호에는 위의 방법에 필요한 기술을 차례로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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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주의력을 모으기 위해 학생들이 졸 때 야단친다거나 떠들 때 벌 준다거나 하는 "외부 강압적 통제" 방법은 구시대의 방법입니다. 지식을 독점한 교수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을 때에나 효과적이었을 것있니다. (한때 학생들이 자신의 지도 교수를 "아바이"라고 불렀습니다. 교수가 학생들의 앞날에 아버지 만큼 절대적인 행세를 하던 때의 유행어가 구시대의 학생-교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새시대에는 교수의 권위가 "모범성"에서 나옵니다.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교수는 새시대의 모범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권위를 내세우는 교수는 학생들에게 무섭다기보다는 그저 이상하거나 불쌍한 존재로 비쳐질 따름입니다. 권위 내세우기는 스스로 초라해지는 지름길인 것이지요.

ⓒ Peck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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